정치는 언제나 권력의 문법 위에 서 있다.
보수든 진보든, 이념을 떠나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내려놓기보다 지키려 하고, 잃은 자는 다시 손에 넣기 위해 싸우게 된다.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되는 정치의 본질이자, 권력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2025년,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명확히 기울어져 있다.
거대 야당이자 실질적인 다수당인 민주당은 국회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입법 권력을 공고히 하며, 다가올 대선과 이후 있을 총선, 지방선거까지를 내다보는 장기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반면 보수 진영은 존립의 기로에 서있다.
그 중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대한민국 정치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다.
이번 탄핵은 한명의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의 몰락을 넘어 보수가 오랜 기간 지켜왔다고 주장해온 법치주의와 공정성이라는 핵심가치 자체를 흔든 사건이었다.
국민과의 신뢰가 정치적 생명선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를 놓쳤고, 그 이유는 명확했다.
가장 큰 패 원인은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되었는데,
집권 초기부터 강조했던 법치와 공정,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점차 이념적 명분으로만 남았고, 실제 정치 행위는 국민의 삶과 기대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
특히 경제적 위기 대응 지연, 사회적 갈등의 방치, 야당과의 협상 회피는 보수가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안정과 통합'이라는 가치마저 저버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실책은 계엄령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민과의 소통과 설득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권력의 위기 앞에서 선택한 것은 민주적 설득이 아닌 강압적 통제였고, 민주적 정당성을 근간으로 하는 보수 정권이 오히려 그 토대를 무너뜨린 셈이 되어 버렸다.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왜 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정말로 그토록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면, 대통령은 왜 매일같이, 아니 최소한 매주 한 번이라도 국민 앞에 나서지 않았는가?”
“왜 담담히, 절박히, 국민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이겨내자고 호소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나는 매우 어렵다. 이 상황은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다”고 국민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 권위를 훼손하는 일일까?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 아닐까?
우리는 안다. 권위란 결코 강한 말과 단호한 태도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은 진심을 원하고, 책임 있는 고백 앞에서는 분노보다 연대를 선택한다.
‘함께 가자’고 말할 용기를 낼 때, 비로소 권위는 강해진다.
윤석열 정부는 바로 그 ‘함께’라는 말을, 너무 오랫동안 유보했다.
탄핵이라는 결과적로 보면 윤석렬 정부는 국민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의혹을 남기게 된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권위의 진정한 기반은 국민과의 자발적 동의와 공감에 있다”고 지적하였던 것 처럼 결국 윤석열 정부는 스스로가 내세운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이전 미국의 트럼프 1기 정부가 남긴 교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보수적 접근은 초기엔 강력한 결집력을 보였으나 장기적으로 미국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트럼프의 실패는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의 위험성을 드러낸 사례였다.
한국의 보수 역시 유사한 함정에 빠졌다.
윤 정부는 강성 지지층의 결집과 이념적 순수성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중도층과 합리적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듣지 않았다.
국민적 공감 없이 이뤄지는 개혁이나 강압적 통치는 지속 가능한 정치적 동력을 얻을 수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러한 보수 정부의 실책을 살펴볼 때 미국에서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정책은 한국 보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 정부는 재집권 이후 다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하면서 교육 정책에서부터 다양성과 포용성을 제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 폐지와 같은 정책은 사회적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여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무역 갈등과 소비자 물가 상승을 초래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트럼프의 일방주의 정책은 더욱 뚜렷해졌다. NATO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압박, WHO와 같은 국제기구와의 협력 중단은 전통적 동맹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지지층 결집을 가능하게 할지 모르나, 결국 국제적 고립과 사회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한국 보수는 이러한 트럼프식 정치가 가진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 근본적 이유 역시 강성 지지층 중심의 정치, 소통과 설득을 배제한 강압적 통치 스타일 때문이었다.
보수가 추구해야 할 정치란 극단적 양극화와 통제가 아니라, 국민적 합의와 공존의 기반 위에 세워지는 정치다. 이제 한국 보수는 미국 보수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트럼프식 강경 정치가 초래하는 분열과 국제적 고립을 명확히 인식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보수가 나아갈 길: 공존과 신뢰 회복의 정치
먼저, 한국 보수는 권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왜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가?”
"왜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나?”
“권력의 위기에서 민주적 설득 대신 권위적 통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적 쇠퇴는 제도의 붕괴가 아니라 시민과의 신뢰가 붕괴될 때 시작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탄핵 사건이 명확히 보여준 것처럼, 국민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는 민주사회에서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보수가 앞으로 회복해야 할 가치는 권력 자체가 아니라, 국민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신뢰 회복이다.
보수가 놓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신뢰’였다
이 과정에서 보수는 과거의 경직된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란 “승자의 독점이 아니라 패자의 목소리까지 경청하는 과정”이다. 이는 보수가 다시 중도층과 합리적 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다. 한국 보수가 추구해야 할 미래는 열린 보수, 즉 다름을 품을 수 있는 정치적 포용력이다.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 길은 더욱 강력한 통제가 아니라 민주적 설득과 공존의 문화에 있다.
보수가 가야 할 길 – 권력이 아닌 ‘다름을 품는 정치’로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본질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한국 보수는 이 가치를 다시 한 번 깊이 새기고, 중도층과 합리적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정치적 극단화를 넘어, 사회적 다양성과 중도를 포용하는 유연한 태도야말로 보수가 나아갈 유일한 지속 가능한 길이다.
보수의 미래를 위한 질문: 무엇을 지킬 것인가?
보수가 이제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정치적 전략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가 국민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권력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 보수의 존재 가치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보수 진영은 지금부터라도 권력의 재획득이 아닌 국민과의 신뢰 회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보수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권력 대신 사회적 공존과 신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계엄과 같은 강압적 방식 대신, 국민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서만 한국 보수는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보수가 지금 직면한 위기는 결국 권력의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존의 정치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한국 보수가 다시 신뢰받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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