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현실을 배경으로, 민족적 비애와 희망의 가능성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다.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빼앗긴 조국의 현실을 자연에 투영하며, 슬픔과 생명력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이 시는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의 주제와 시대적 배경
시의 제목에 나타난 "빼앗긴 들"은 단순한 자연을 넘어 일제강점기 속에서 상실된 조국을 상징한다.

들판이 빼앗겼다는 사실은 곧 민족의 자유와 존엄이 유린당한 현실을 암시하며, 여기서 시인은 봄이라는 희망의 상징을 통해 상실과 재생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하지만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결말은 희망이 쉽게 실현되지 않을 것을 경고하며, 비극적 현실에 대한 깊은 자각을 보여주고있다.
구조와 내용
이 시는 조국의 상실을 바라보는 화자의 내적 갈등과 자연 속 생명력을 발견하며 느끼는 희망의 가능성을 교차적으로 서술 하고 있다.
(1) 빼앗긴 현실에 대한 직시
시의 첫 구절,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조국을 잃은 민족의 현실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드러낸다. '남의 땅'은 빼앗긴 조국을 지칭하며, '봄'은 희망과 재생의 상징으로, 이 시의 첫 질문은 시적 화자의 절망과 간절한 기대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2) 자연과의 교감
시인은 이어지는 연들에서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햇살을 받고 논길을 걷는 모습은 화자가 조국의 들판에서 느끼는 그리움과 애틋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와 같은 표현은 자연의 생명력이 민족적 비애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보리밭, 도랑, 나비 등은 조국의 생명력을 상징하며, 자연의 활기가 화자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게 된다.
(3) 노동과 재생의 열망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라는 대목에서 화자는 빼앗긴 땅을 되찾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다. 호미는 노동과 재생의 상징으로,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일구겠다는 화자의 열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는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향한 긍정적 태도를 나타낸다.
(4) 화자의 내적 갈등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자연 속에서 희망의 징후를 발견하지만, 빼앗긴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결말은 민족적 현실의 비극과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데, 화자는 이 질문과 대답 없는 독백을 통해 길을 잃은 민족의 방황과 절망을 대변한다.
주요 이미지와 상징
- 들: 빼앗긴 조국의 상징으로, 민족적 상실과 동시에 회복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 봄: 희망과 생명력의 상징으로, 화자가 갈망하는 미래의 조국을 뜻한다.
- 보리밭과 도랑: 자연의 생명력과 순수성을 나타내며,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족적 힘을 상징한다.
- 호미: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한 노동과 재건의 의지를 나타낸다.
문학적 특징
이 작품은 강렬한 대비와 감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빼앗긴 현실과 자연의 생명력을 대비하여, 현실의 비극과 희망의 가능성을 동시에 강조하며, 햇살, 바람, 보리밭과 같은 자연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상징과 은유를 통해 민족적 고난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대한 생각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민족적 비애와 재생의 희망을 담아낸 시이다. 이 작품은 억압과 상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화자의 태도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시는 단순히 과거의 민족적 현실을 넘어서, 개인과 공동체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이 시는 자유와 억압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빼앗긴 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상징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구조나 제도 속에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고 느끼기 때문에, 불평등, 차별, 정치적 억압 등 다양한 형태의 억압으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다.
이 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억압받는 현실 속에서도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둘째, 이 시는 희망과 재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 속의 ‘봄’은 억압 속에서도 끝내 찾아오는 희망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는 위기를 극복하며 회복과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불안, 환경적 위기, 사회적 갈등과 같은 문제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과 재건의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이 과정에서 이 시의 메시지는 개인과 공동체가 미래를 낙관하며 나아가도록 용기를 갖게 한다.
셋째,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인식을 전달한다.
시 속에 등장하는 보리밭, 도랑, 나비 등은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희망과 위로를 상징한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화자의 고통을 치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넷째, 이 시는 공동체적 연대와 재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듯, 화자는 노동을 통해 빼앗긴 땅을 되찾고자 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우리사회의 사회적 불평등이나 공동체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함께 일하고 재건하는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태도다.
마지막으로, 이 시는 개인적 성찰과 정체성 회복의 계기를 제공한다.
시 속에서 화자가 자신에게 던지는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라는 질문은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내적 여정을 독려하며,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생각의 기초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억압과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 자연과의 교감, 공동체적 연대와 성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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