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국가를 필요로 하는가?
인간 사회는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 속에서 발전해 왔다. 우리는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립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질서 없는 사회는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인간이 원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면, 굳이 법과 국가 같은 억압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홉스는 인간이 본래 자유로운 상태로 살아간다면 결국 끝없는 투쟁과 공포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즉,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상태, 오직 힘과 본능만이 지배하는 무질서한 상태가 인간의 자연 상태라는 것이다.
홉스가 살았던 17세기는 격변의 시대였다. 영국은 왕권과 의회 간의 갈등으로 내전에 휩싸였고, 종교적 대립은 사회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국 홉스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인간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며, 이 국가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홉스는 이를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홉스는 국가가 바로 이러한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야만 개인들의 끝없는 투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홉스가 그린 자연 상태는 어떤 모습이었고, 왜 그는 절대권력을 주장했을까? 이제 그의 사상을 깊이 들여다보자.
홉스의 자연 상태와 절대권력의 필요성
1. 자연 상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홉스가 말하는 "자연 상태"란 법과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국가를 형성하기 전의 원시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법이 없는 사회가 필연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혼돈의 상태를 철학적으로 가정한 것이다. 그는 자연 상태를 단순히 "야만적인 과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도래할 수 있는 사회적 위기와 무정부 상태로 해석했다.
홉스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결국 끊임없는 싸움과 두려움 속에 놓일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자기 보존을 최우선시하는 존재라는 그의 가정에서 비롯된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다음 세 가지 속성을 포함하고 있다.
(1) 경쟁심 (Competition)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존재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도 보장된 재산이나 안전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먹을 것, 거처, 생필품과 같은 기본적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는 단순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행동이다.
만약 한 사람이 식량을 많이 가졌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힘이 약한 사람은 이를 막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집단과 연합하거나, 먼저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려 할 것이다.
(2) 불안감 (Diffidence)
자연 상태에서는 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조차도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홉스는 이러한 불안을 "자신감 부족"이라는 뜻의 Diffidence(디피던스)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A가 B의 집을 약탈했다면, B도 언제든지 복수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A는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선제 공격을 유도하는 요인이 된다. 즉, 누군가 내 것을 빼앗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공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3) 명예욕 (Glory)
인간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홉스는 명예욕과 자존심이 자연 상태의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신의 위신과 명성을 지키는 것이 곧 생존과 직결된다.
만약 누군가 내게 무례하게 굴거나, 내 명예를 훼손한다면, 나는 그를 공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고 또다시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는 사소한 모욕조차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된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갈등과 공포에 시달리며, 결과적으로 삶은 "고독하고, 불결하며, 야만적이고, 짧다"는 홉스의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인간은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사회 계약이다.
2. 사회 계약과 절대권력의 필요성
자연 상태의 끔찍한 현실을 직면한 인간은 결국 이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홉스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고, 일정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계약을 사회 계약(Social Contract)이라고 부른다.
사회 계약이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부 자유를 포기하고, 공동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즉, 각 개인은 자신의 자연권을 제한하는 대신, 국가라는 권위 있는 존재가 자신을 보호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홉스는 이를 "자연권의 양도"라고 설명했다.
이 계약을 통해 인간은 무법천지의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며, 법과 질서가 있는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홉스는 단순한 사회 계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국가가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면, 다시 자연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단순한 계약을 넘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 리바이어던: 절대권력을 지닌 국가
홉스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국가를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고 불렀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의 이름으로, 아무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를 상징한다. 홉스는 국가가 바로 이러한 리바이어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홉스는 국가에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하다고 보았을까?
(1) 국가가 강력하지 않으면 사회는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
만약 국가의 권력이 제한적이라면, 개인들은 여전히 국가의 법을 따를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을 어겨도 별다른 처벌이 없다면 사람들은 다시 자연 상태에서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빼앗으려 할 것이다. 홉스는 이러한 상황을 "자연 상태로의 회귀"라고 보았다. 즉, 국가는 개인들이 함부로 도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
(2) 국가는 개인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홉스는 국가의 권력이 개인보다 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국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법과 질서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는 군주제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영국 내전으로 인해 왕권이 약해졌을 때,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목격한 홉스는 강한 국가만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국가의 권력은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
홉스는 국가의 권력이 여러 기관으로 나뉘게 되면, 권력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만약 입법권과 집행권이 서로 대립한다면, 국가는 내부적으로 분열될 것이며 이는 곧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국가의 권력이 하나로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홉스의 철학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이러한 인간 본성으로 인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며, 이는 곧 공포와 혼란을 초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사회 계약을 맺고 국가라는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홉스는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강력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그는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으며, 오직 절대적인 권력만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홉스 사상의 현대적 의미
홉스가 주장한 절대 권력과 리바이어던의 개념은 17세기 당시에는 혁신적이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 사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통해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있지만, 국가의 존재 자체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홉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로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경찰과 군대, 사법 체계가 없다면 사회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정부의 역할이 너무 강하면 독재로 흐를 수 있지만, 너무 약하면 무정부 상태가 되어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홉스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서가 필요하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권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문제는 홉스가 주장한 절대적 권력이 아니라, 권력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17세기 홉스가 던진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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