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어느 봄날 아침, 창문 틈으로 은은한 빛이 스며들면
그 미묘한 온기를 먼저 느끼는 이는 둘 중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이가 눈을 뜨게되면, 서로 다른 시간에 시작한 하루가 이내 하나로 포개지게 됩니다.
그렇게 겹겹이 쌓이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갑니다.
“당신을 사랑해”라는 직접적인 말보다,
한 발짝 먼저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모습이나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곤 합니다.
서로 다른 두 마음이 자라나는 숲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부부라는 이름은
서로 다른 씨앗이 하나의 숲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두 사람은 태생부터 다른 빛깔, 다른 향기를 지니고 있지만,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나란히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 뒤엔 같은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어가게 됩니다.
언뜻 보면 각자의 방향으로 자라는 것 같아도, 바람이 불 때 서로를 보호해주고, 비가 내릴 때 옆줄기로 물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다가어오는 계절마다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추억은 숲의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굵어집니다.
때로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가만히 서로의 웃음소리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그저 옆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가 서로에게 가장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니까요.
동지(同志)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는 길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는 예상치 못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흐릿한 그림자처럼 계속 이어집니다.
때론 길이 좁아 양 옆으로 휘청거리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내려앉기도 합니다.
그러한 순간에 곁에 있는 이가 함께 걸어준다면 어떨까요.
부부는 어쩌면 전쟁터 속 전우처럼, 서로의 등 뒤를 지켜주는 동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등을 다독이고, 알게 모르게 무거워진 가방을 슬며시 들어주는 사람 처럼.....
“내가 대신 들어줄게”라고 말하지 않아도, 어느새 발걸음이 가벼워져 있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되죠. “아, 이 사람이 내곁에 있구나.”
잠들기 전 마주 앉아, 고단했던 하루를 짧은 문장으로 나누는 일.
그것마저도 부부에게는 더없이 든든한 힘이 됩니다.
입 밖으로 털어놓음으로써 아물어가는 마음의 상처가 있고, 짧은 안부 한 마디로 지워지는 고단함이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곁을 지키며,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풍경을 함께 견뎌내는 것은 ‘함께 신발끈을 묶고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나아가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친구처럼, 사소한 웃음을 나누는 사이
언젠가 집 안 가득 웃음소리가 번질 때, 이러한 일들이 대단한 사건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저 사소한 말장난이나, 함께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과 같이
부부가 친구 같다는 것은 이런 모습들에서 잘 드러나게 됩니다.
아무리 어색한 농담도, 상대가 웃어준다면 그것이 곧 즐거움이 되고,손뼉을 마주칠 때의 '짝' 하는 경쾌한 울림들이 집 안 구석구석으로 퍼지게 되죠.
오늘 본 드라마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이 우스꽝스러워 함께 '낄낄' 웃고, 아침 메뉴를 고민하다가 “오늘은 된장찌개에 계란말이 어때?”라는 소박한 의견 교환이 오가더라도, 그 안엔 작지만 분명한 행복이 있습니다.
가만 보면, ‘친구’라는 말 속에는 마음을 여는 편안함이 깃들어 있지요.
"말해도 괜찮다"는 신뢰, "웃어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서로의 눈빛에 담긴 유쾌함이 순간순간을 반짝이게 합니다.
나란히 시선을 두어 피어나는 꽃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부부의 삶도 그렇습니다.
혹여 한 사람은 밝은 파랑색을 좋아하고, 또 다른 사람은 고요한 녹색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두 빛깔이 섞여 만들어낼 새로운 색조를 기대하며 같은 캔버스에 붓을 얹어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어느새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사소한 일일지라도 하나씩 결정해 나가는 동안, 여러 차례 부딪히고 모난 부분을 다듬는 일은 필연적이랍니다.
하지만 결국, 두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은은한 빛이 깃든다면, 그 빛을 따라가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바라보는 곳이 같다는 것은 꼭 “거창한 꿈을 함께 이루자”라는 거창함만 뜻하진 않습니다.
따뜻한 식탁에서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일, 주말 오후 한가롭게 걷는 길에서 같은 낙엽을 밟는 일, 그리고 눈 오는 겨울밤 창가에 묻어나는 하얀 고요를 한동안 함께 바라보는 일.
이처럼 작고 소소한 장면들이 모여, 어느새 서로를 향한 신뢰와 애정이 한겹 합겹 두터워지게 됩니다.
부부란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시(詩)
꽃병 속에 꽂힌 들꽃 한 송이, 평범한 날씨 얘기, 일의 성과가 없었던 날에도 어깨를 다독여주는 짧은 손길.
이런 것들이 매일매일 반복되고, 날들이 겹쳐지며 차곡차곡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정말 중요하고 큰일”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지만, 사실 가만히 돌아보면, 가슴 깊이 남는 기억은 작은 조각들이지요.
옆에 앉은 사람이 건네준 미소,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몇 마디의 위로가 지치고 텅 빈 마음을 채워주곤 합니다.
시인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독자가 눈물 흘리는 시구가 있듯, 부부의 일상 속에도 스스로 알지 못하던 시와 같은 순간이 쉴새 없이 흘러갑니다.
그것을 잡아채려 애쓰기보다, 그저 함께 느끼고 곱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같은 하늘을 꿈꾸며, 같은 온기를 나누는 길
어쩌면 부부라는 관계는, 아주 낮게 맴도는 속삭임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유일한 언어를 지닌 이들인지도 모릅니다.
직접 “사랑한다”는 고백을 생략해도, 어느새 주변 공기가 달콤해지고, 불어오는 바람조차도 두 사람을 향해 미소 짓는 것만 같다면 그것이 바로 깊은 교감의 증거가 아닐까요.
걸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낯선 풍경 앞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이 있다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언뜻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바라보는 하늘은 같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하늘 아래에서,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 묘한 안정과 평온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부가 공유하는 결의이자 우정일 것입니다.
때로는 일상의 소음 속에서 애정과 신뢰를 놓칠까 두렵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발자국이 겹쳐지고 또 어긋나면서도, 결국에는 한 줄로 이어지리라는 믿음이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렇게 작은 속삭임들이 모여, 부부라는 이름을 넘어 인생이라는 긴 노래를 함께 완성해 가는 것이니까요.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이 말처럼, 부부는 날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자신들만의 숲을 가꾸고, 조용한 언어로 서로를 다독이는 사람들.
그러니 오늘도, 신발끈을 한번 고쳐 매고 눈앞의 길에 시선을 살포시 두어봅시다.
더 멀리 가려 애쓰기보다는, 발걸음이 머무는 작은 순간을 충실히 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동행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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