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
이 속담은 선한 의도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의도로 행동하지만, 그 결과가 항상 좋게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돈을 기부했다고 해보자, 그 돈이 적절하게 사용되어, 그들의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을 도와준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겠지만, 잘못된 구호 활동으로 현지 경제가 파괴되거나, 지역 사회의 자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많이 회자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Play Pump라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사업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아이디어를 발견하여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에게서 찬사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경제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이런 사례도 보게 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지도자였던 막시밀리앙 로베스 피에르는 혁명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생필품 통제였는데, 다양한 생필품 중에 우유가 그 대표적 사례다.
혁명 당시 빈부 격차와 기아 문제가 심각했는데,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식료품 가격을 통제하려 했다. 특히 우유는 어린이와 병자들에게 중요한 영양공급원이었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고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선한 의도로 모든 사람이 우유를 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하여, 영양상태를 개선하고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1793년 법령을 통해 우유를 포함한 여러 생필품의 가격을 강제로 낮추었다.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위협에 으해 당장 우유 가격을 하락했고,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 가격을 급상승했고, 생산되는 우유도 급감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너무도 당연하고 쉽게 결론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례는 경제적으로 보면 수지 타산이 안맞은 결과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고, 규제의 역설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도자의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수 있다는 것을 항시 우리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순수하게 선의를 가지고 행동을 하더라고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 사회의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선해 보이거나, 다른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표면적으로는 선하게 보이고,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에 대한 것들이다.
어떤 것이 정의이고, 공정일까?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 신체적 피해를 일으키는 나쁜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게 될까?
이런 경우 대부분 사회 공적인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발생하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양한 욕구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 되면 만족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원하게 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인간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 욕구 이외에 명예욕, 권력욕, 물욕 등 다양한 욕구를 요구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이야기 한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게 되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수많은 갈등을 겪게 되고 그 속에서 공익과 사익에 대한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 속에 살아간다.
좋은 의도, 선의를 가지고 선택하고 행했던 일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갈등을 가져오게 되어 인간 관계에 곤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여 일시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면, 결과적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주어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이와 같지 않을까?
반면에, 의도는 나쁘지만 결과는 좋은 경우도 있다.
한 기업이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사의 이익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환경 보호 활동을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동참하게요, 결과적으로 환경오염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경우 비록 의도는 매우 이기적일지라도 결과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그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선의가 항상 선의를 가져온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선하기도 하지만 악하기도 한 존재다.
인간이 선하다고 믿으려면, 우선 선이 만드는 그림자인 악이 존재함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완벽히 선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은 스스로 선함이라는 관념 속에 빠지지 않았는지를 항상 관조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자신 내면의 악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악한 행동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의 ‘일그러진 자아상’을 상대에게 끊임없이 ‘투사’한다.
이러한 심리 기제가 극단적일 경우 인간은 고통스러운 정신 질환을 앓게 되며, 타인과 온전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때문에
“누구나 조금씩은 비정상”일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스스로의 선과 악을 관조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수많은 행동들이 때로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을 우리는 목도할 때가 많다. 좋은 결과는 선한 의지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좋게 보이는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선택에 놓여 있다.
누구에게는 포퓰리즘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구명줄과 같은 것들이 될 수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 이들에게는 어려움과 절망을 가져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의 가슴속에 양심이 흐르는 강을 살펴보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나,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처럼
이제 스스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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