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란 금융기관의 일종으로, 예금, 대출, 환전, 송금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말합니다. 은행은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국가의 재정과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과 개인이나 기업의 금융거래를 수행하는 상업은행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대한민국의 은행 역사와 한국은행의 창립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은행의 기원과 세계은행의 발전
은행의 기원은 고대에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은행과 유사한 기관이 존재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동전이 발명되면서 화폐의 거래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은행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교역과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시에나에서는 1472년에 설립된 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가 현재까지 영업을 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1397년에 설립된 메디치 가문의 Medici Bank는 유럽 전역에 지점을 설립하고, 국제적인 금융거래를 수행하였습니다. 메디치 은행은 예금, 대출, 환전, 송금, 수표, 어음 등의 현대적인 은행업무를 개발하고, 예금자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등의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메디치 은행은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도 유명하며, 유럽 은행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후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영국은 1694년에 중앙은행의 선구자인 영국은행을 설립하였고, 프랑스는 1800년에 프랑스은행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들 은행은 국가의 재정과 통화정책을 담당하였으며, 국채의 발행과 정부의 대출을 통해 국가의 부채를 관리하였습니다. 또한 상업은행들은 산업과 무역의 자금을 공급하고, 국제적인 금융거래를 활성화하였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독일 등의 신산업국들도 은행을 설립하고, 세계 금융시장에 참여하였습니다. 20세기에는 세계대전과 경제위기, 금융혁신 등의 변화에 따라 은행의 역할과 기능이 다양화되었습니다. 현재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국제기구와 협력하며,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은행 역사
대한민국의 은행 역사는 1878년 일본제일은행이 부산에 최초의 근대은행 지점을 설립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1897년에 국내 민간자본을 중심으로 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을 설립하였고, 1899년에 구 상업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들 은행은 국내의 상업과 산업의 자금을 공급하고, 국제적인 금융거래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이들 은행은 일본의 지배와 감독을 받게 되었고, 국내의 자본과 자원은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1906년 순수 국내 민간자본으로 한일은행이 설립되었고, 1909년 구 한국은행이 설립되어 (일본)제일은행이 담당하던 중앙은행의 업무를 하였습니다. 이 은행은 1911년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1948년 정부수립 직후 근대적인 금융 제도를 확립하고 통화신용정책을 중립적이고 민주적으로 수립 집행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이에 따라 1950년 5월 한국은행법이 공포되었고, 같은해 6월 12일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창립하였습니다.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서,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물가안정은 돈을 발행하고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물가안정 목표를 정하여 국민에게 공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법의 변천
한국은행의 설립근거법인 한국은행법은 1950년 5월 5일 제정된 이후 금융경제 환경과 정부의 경제운용방식 및 정책기조 등의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개정되었습니다.
한국은행법의 제정(1950. 5. 5)
한국은행이 설립될 당시 우리나라는 격심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금융제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경제질서가 매우 혼란한 상태에 있었는데,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하여는 통화신용에 대한 통제능력을 갖춘 현대적인 중앙은행의 설립이 절실히 요청되었습니다. 한국은행법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통화가치의 안정, 금융의 민주화와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중앙은행제도의 기본이념을 충실히 반영하여 제정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에 통화가치의 안정 외에 은행·신용제도의 건전화와 국가의 대외결제준비자금 관리도 포함시킴으로써 한국은행은 은행권의 발행, 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집행의 기능을 수행함과 아울러 은행감독 및 외국환업무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행 정책결정기구(금융통화위원회)를 국민경제의 각 부문을 대표하는 인사로 구성하고, 정책의 수립·운영에 있어서도 법적으로 정부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62년 개정(1962. 5. 24)
한국은행법은 제정 후 10여년이 지난 1962년에 큰 전환을 맞았습니다. 당시 새로 출범한 정부는 정부주도의 성장위주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금융면에서 정부정책을 원활하게 뒷받침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였습니다. 그동안 한국은행이 운영해 오던 외환정책기능이 정부로 이관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책결정기구(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개칭)의 구성원 중 정부추천인사의 비중이 확대되고,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의결사항에 대하여 재무부장관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한국은행의 예산에 대하여 정부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한국은행에 대한 재무부장관의 업무검사권을 신설하는 등 한국은행에 대한 정부의 간여장치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한국은행의 정책운영 및 내부경영에 관한 독립성은 크게 후퇴하였습니다.
1963년 개정(1963. 12. 16), 1968년 개정(1968. 7. 25),1977년 개정(1977. 12. 30), 1982년 개정(1982. 12. 31)
1963년부터 1982년까지 4차례의 개정에서는 단순한 자구수정(1963년 개정), 통화신용정책수단의 보완(1968년·1977년 개정), 은행감독담당기구의 확대(1977년 개정), 한국은행 예산에 대한 정부승인 폐지(1982년 개정)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한국은행법의 골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1997년 개정(1997. 12. 31)
한국은행법은 1997년 금융·외환위기에 따른 금융개혁의 과정에서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였습니다. 통화신용정책 운영의 자율성이 상당히 제고된 반면 한국은행은 은행감독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의 임무가 물가안정만으로 축소되었지만, 한국은행의 중립성 보장이 법률에 명시되고 재정경제원장관 대신에 한국은행총재가 정책결정기구(금융통화위원회로 명칭 환원)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재정경제원장관은 더 이상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게 되고 금융통화위원회 구성원 중 정부추천인사의 비중이 축소되었습니다. 한국은행에 대한 재정경제원장관의 업무검사권도 폐지되었습니다. 통화신용정책 운영방식으로 물가안정목표제가 새로이 도입되고 한국은행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국은행은 매년 1회 이상 통화신용정책 수행상황에 관하여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은행의 중립성 보장 측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그동안 관장해 오던 은행감독기능을 새로 출범한 통합금융감독기관(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에 넘기고 한국은행은 은행에 대하여 통화신용정책 수행에 필요한 자료제출요구권과 금융감독기관의 검사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만 가지게 됨으로써 그 기능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3년 개정(2003. 9. 3)
금융·외환위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큰 변화를 겪은 한국은행법은 2003년에 이르러 그 동안의 운영경험을 바탕으로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은행부총재가 새로이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원이 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이 강화되고 정책결정과 집행간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감시기능을 한국은행이 관장하도록 하고 통화신용정책 운영방식을 연간단위 물가안정목표제에서 중기목표제로 변경하였으며, 한국은행의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및 공동검사 요구 시 금융감독원의 이행의무를 보다 강하게 명시하였습니다. 내부경영에 있어서도 재정경제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한국은행 예산의 범위를 급여성 경비예산으로 축소함으로써 자율성이 신장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 수행상황에 관하여 국회에 보고하여야 하는 횟수가 매년 2회 이상으로 늘어남으로써 한국은행의 책임성이 강화되었습니다. 종전의 한국은행법 개정들이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데 비하여 2003년 개정은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기능에 있어 진보적 개선을 이룸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단계에 부합하고 국제기구가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접근하는 선진 중앙은행제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큽니다.
2011년 개정(2011. 9. 16)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은행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정책수립과 집행을 제약하는 제도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한국은행에 금융안정 책무를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거시 금융안정 상황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자료제출 대상 금융기관을 확대하고 긴급유동성 지원 제도를 개선하였으며 지급준비금 적립대상채무를 예금 이외로 확대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서 등과 외부감사를 받은 결산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였습니다.
2012년 개정(2012. 3. 21)
한국은행총재의 지위와 권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총재 임명 시 국회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하는 한편 급여성 경비예산에 대한 국회 보고의무를 신설하는 등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하였습니다. 또한 외화보유액 운용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총재가 외화자산의 운용과 관련된 주요 계획에 관하여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명시하였습니다. 이외에도 화폐단위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고 기념화폐 발행 근거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2016년 개정(2016. 3. 29)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훼손한 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법적 간결성·함축성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에서, 법 문장의 표기를 한글화하고, 어려운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며 복잡한 문장은 체계를 정리하여 간결하게 다듬음으로써 한국은행법을 쉽게 읽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018년 개정(2018. 3. 13)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임기 교차를 위해 법 개정 후 최초 임명되는 일부 위원의 임기를 한 차례에 한정하여 3년으로 조정하였습니다. 또한 전임위원의 임기만료 즉시 임명되지 않은 후임위원의 임기는 전임위원의 임기만료 즉시 개시된 것으로 보아 임기 교차의 효과가 지속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통계·조사 관련 자료·정보의 요구 대상으로 정부기관, 법인 및 개인 외에 지방자치단체를 명시하였습니다.
한국은행은 한국전쟁과 6.25전쟁 이후의 경제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경제성장기에는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통화정책을 수행하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글로벌화와 금융혁신에 대응하고,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개혁과 구조조정을 추진하였습니다.
한국은행은 2000년대에는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98년 부터 인플레이션 타겟팅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인플레이션 타겟팅제도(물가안정목표제)란
한국은행이 정한 목표 인플레이션률을 달성하기 위해 통화량을 조절하는 제도로. 통화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명확히 하고, 통화정책의 예측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매년 국민들에게 물가안정 목표(물가지수 3.0±1%를 미리제시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여야 합니다.
한국은행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 목표 인플레이션률을 2.5~3.5%로 설정하였고, 2016년부터는 2%로 낮추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타겟팅제도를 통해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의 코로나19 팬데믹에는 긴급한 통화완화와 유동성 공급을 통해 경제의 충격을 완화하였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되어, 세계 금융시장에 심각한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였습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5.25%에서 2%로 급격히 낮추고, 외환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였습니다. 또한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주요국과 스와프라인을 체결하고, 국제금융기구와 협력하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에 걸쳐 인명과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25%에서 0.5%로 역대 최저치로 내리고, 정부의 재정정책을 지원하였습니다. 또한 시중은행과 증권사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특별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능동적이고 유연한 통화정책을 수행하였습니다.
한국은행 외에도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은행이 존재합니다.
1954년에 한국산업은행이, 1962년에 최초의 서민금융기관인 한국국민은행이 설립되었고, 1967년에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들 은행은 각각 산업, 소비자, 지역의 금융수요를 충족시키고,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1982년에 외환은행이, 1991년에 신한은행이, 1995년에 하나은행이, 1996년에 우리은행이, 1997년에 국민은행이, 2001년에 농협은행이, 2002년에 기업은행이, 2006년에 산업은행이, 2011년에 케이뱅크가, 2017년에 카카오뱅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들 은행은 각각 외환, 신용카드, 통합, 소비자, 주택, 농업, 기업, 산업, 인터넷, 모바일 등의 특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쟁력과 혁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결론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은행 역사와 한국은행의 창립 과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은행은 국가와 사회, 개인과 기업의 금융활동을 지원하고,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은행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현실,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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