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과 사랑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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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사전적 의미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면 도덕적 의무라고 합니다. 

칼레의 시민 - 위키디피

어원을 살펴보면

Noblesse Oblige(노블리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노블레스가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주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으로,  이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 데 있음을 말해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불한사전(민중서림) :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해야 한다”(격언)

뉴에이스 영한사전 :  “높은 신분에 따르는 정신적 의무”

간혹 문헌에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표기하는데 2002년 국립국어연구원의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통일되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역사적으로 요구되어 오던 정신입니다.

로마공화정에서는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호민관이나 집정관 등의 공직자가 될 수 없었고, 이러한 로마의 귀족들이 사회적인 의무를 충실하게 함으로써 로마가 강력한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고 합니다.(윤승준, 2002).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로마 시대 왕과 귀족들의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 정신에서 비롯되었으며, 귀족들의 솔선수범하는 태도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  칼레 도시의 이야기

백년전쟁이 발발하자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항구 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칼레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맞서 싸웠지만 전쟁이 길어지자 식량이 고갈되어 끝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시민들 중 6 명을 뽑아와라.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겠다. " 

 

시민들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칼레의 갑부 외수타슈 생피에르가 자원하고 나서면서 고위 관료와 부유층 인사를 중심으로 6명이 자원했습니다. 

 

이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자루 옷을 입고 영국 왕의 앞으로 나왔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임신 중이던 영국 왕의 아내가 처형을 만류했습니다.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습니다.

왕은 고심 끝에 이들을 풀어 주었고 6명의 시민은 칼레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해 내려 오는 가진 자의 의무를 상징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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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고,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 운동의 기치아래 외형성 정장과 현실적 부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OECD 국가로서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2000년 이후의 한국사회는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지원하고,  정부차원에서 대외적으로 개발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하면서  '나눔과 공유'라는 새로운 트렌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을 보면 정치지도자, 사회운동가, 기업 CEO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최근 사회지도층의 권력남용과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들을 뉴스에서 보게 될 때마다 아쉬움이 생깁니다. 

 

지금 이 시점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현대에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나눔과 실천을 강조하는 분위기이고 실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지도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상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반시민의 나눔과 실천은 사회지도층의 나눔과 실천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회적 혜택이 사회지도층에게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 그들의 나눔과 실천마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면. 자본의 집중화로 인해 사회의 갈등이 심해지고 사회의 질은 형편없이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 자체가 계층을 보이지 않게 나누는 인상을 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어 그 진정성의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우려를 뒤엎는 진정성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야말로 우리 사회 지도층의 진정한 의무가 아닐까 하며, 단 6명의 지도자가 칼레를 구한 것처럼 세상을 밝히는 등불은 아주 작은 불빛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희생과 나눔을 의무로 여긴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참고 : 손용근. 2007.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양법학, 21, 167-174

윤승준. 2002.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무엇인가-서양사에서의 노블레스와 도덕적 의무”, 사회비평, 34, 177-192.

엄재근. "역사를 통해 본 사회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정신 :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적질연구 1.1 (2017):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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