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말 노력하고 있어.”
우리는 이런 말을 참 쉽게 한다.
누군가가 밤을 새워 공부하고, 아침 일찍 헬스장에 가며, 주말에도 일을 한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를 ‘노력파’로 인정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력의 크기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가’로 판단한다.
그래서 잠을 줄이고, 여가를 줄이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에게는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게 전부일까?
시간을 많이 쓴다는 것이 곧 노력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노력’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노력은 단지 ‘투자된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3시간을 공부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넉넉한 시간을 할애해 여유롭게 공부하고, 다른 한 사람은 친구의 생일 파티, 드라마 정주행, 낮잠 등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같은 3시간을 책상 앞에 앉는다.
과연 두 사람의 ‘노력’은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노력의 본질은 시간의 양에 있지 않다. 그것은 ‘선택의 질’에 있다.
누군가는 “시간이 나서” 공부하고, 또 누군가는 “시간을 만들어가며” 공부한다.
전자는 여유의 활용이지만, 후자는 우선순위의 조정이다.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나 욕망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오직 하나의 목표를 밀어붙이는 것. 바로 그 선택이야말로 노력의 실체다.
즉, 노력은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했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진짜로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단순히 무언가를 열심히 했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과감히 포기하고 더 나은 방향을 선택했을 때다.
선택이 만들어내는 진짜 노력의 조건
노력은 ‘우선순위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다르다.
여기서부터 노력의 차이는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느낄 때, 실제로는 단지 ‘남는 시간’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진짜 노력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포기’하고, 목표를 삶의 중심에 두기 위해 다른 것들을 정리한다.
예를 들어보자.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이 있다고 하자.
A학생은 하루를 마친 뒤, 남는 시간에 유튜브 대신 공부를 한다.
B학생은 애초에 저녁 친구 약속을 취소하고, 평소 보던 드라마도 중단한 채 공부를 위해 저녁 시간을 온전히 비운다.
두 학생 모두 같은 시간 동안 공부를 했더라도, B학생의 노력은 단순한 시간투자가 아닌, 욕망의 조절과 ‘삶의 재구성’이 포함된 선택의 결과다.
이처럼 노력은 “무엇을 더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덜 하느냐”에서 판가름난다.
인간은 유한한 자원(시간, 에너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에 더 몰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
이 희생이 바로 우선순위의 재정립이며, 여기서 노력의 진정성이 드러난다.
플라톤의 절제: 고귀한 삶은 욕망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와 『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영혼을 세 가지로 나눈다.
이성(logos), 기개(thymos), 그리고 욕망(epithymia). 플라톤은 이성의 지배 아래 기개와 욕망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고귀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절제(sôphrosunê)다.
절제란 단순한 자기억제가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따라 욕망을 ‘관리’하고 ‘질서화’하는 능력이다.
즉, 절제는 내 안의 욕망을 외면하지 않되,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선택’하는 힘이다.
플라톤의 철학을 노력의 개념에 대입해보자.
노력은 ‘욕망을 제거한 상태’가 아니라, 욕망과 싸우면서도 이성의 지시에 따라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다.
운동선수가 맛있는 음식, 늦잠, 친구와의 술자리 등 수많은 유혹 속에서 체계적인 루틴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플라톤이 말한 ‘절제’의 실천이며, 진짜 노력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용(中庸)’의 미덕을 강조한다.
그는 절제가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적절한 욕망’과 ‘적절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phronesis)라고 본다. 결국 철학적 전통에서 노력은 ‘시간을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욕망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로 해석된다.
자기조절과 심리학: 마시멜로 실험이 말해주는 것
1970년대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간단했다. 어린이들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고, 만약 15분 동안 먹지 않고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 실험의 핵심은 ‘즉각적인 만족(delay of gratification)’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느냐였다.
수십 년 뒤, 미셸은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아이들을 추적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마시멜로를 참았던 아이들은 참지 못했던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 건강 상태, 사회적 관계에서 훨씬 높은 성과를 보였다. 즉, 자기조절(self-control) 능력이 장기적인 성공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다시 노력의 본질로 돌아가보자. 단순히 “열심히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유혹을 이겨내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노력은 의지력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더 나아가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의지력도 근육처럼 훈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의지력이 유한한 자원이지만, 반복적인 자기조절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노력이라는 개념이 ‘천성’이 아니라 ‘습관’과 ‘환경설계’에 의해 길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 유혹과 선택의 시대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유혹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스마트폰 한 대면 끝없는 정보, 자극, 쾌락이 손끝에서 터져 나온다. 유튜브, SNS, 게임, 배달앱, 넷플릭스… 모두 사용자의 시간을 뺏기 위해 설계된 알고리즘을 탑재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집중’이란 곧 ‘포기’를 의미한다.
진정한 노력은 단지 시간을 길게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혹을 앞에 두고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기 조절력과, 삶의 방향을 정하는 용기 있는 선택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불확실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들, 유명한 대학 대신 자신의 진로에 맞는 특성화 학교를 택하는 사람들, 편한 길 대신 자신의 가치에 맞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수많은 사례들은 단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삶의 구조 자체를 다르게 설계한 것이다.
즉, 노력은 우리가 포기한 것들의 총합이며, ‘시간’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결정의 결과다.
진짜 노력은 ‘포기의 총합’이다
우리는 흔히 노력의 정도를 측정할 때,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밤을 새웠다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모두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동으로 ‘정말 열심히 했구나’라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살펴봤듯, 진정한 노력은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간을 무엇에 쓸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떤 이는 남는 시간에 목표를 시도하고, 어떤 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재설계한다.
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중심에 두었는가’라는 질문에서 갈라진다.
플라톤이 말한 ‘절제’는, 우리가 욕망을 이겨내고 더 높은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힘이다.
심리학자 월터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이 보여준 것처럼, 진정한 성취는 즉각적인 만족을 넘어서려는 자기조절력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회는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노력은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에서 의미를 가진다.
결국 노력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순간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낸 태도이자 방향성이다.
당신이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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