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가 다녀간 뒤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그건 내가 잠깐 타오르는 불의 근원이거나, 파도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모든 게 순간일 뿐이다.
그런데 너무 할 말이 많으면 일렁이게 되고,
너무 아프면 반짝이게도 된다.
저자의 철학적 영감이 느껴지는 서두를 보면서 여러가지 궁금함이 들었다.
여영현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일까.
여영현 시인은 시를 통해 삶의 심층과 그 이면을 사랑으로 담아내고 있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여정은
삶의 여러 위기 속에서 겪게 되는 이면의 힘에 주목하며
우연하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아픈 일상에서 위안이 되어 왔음을 알려온다.
너의 이름에 주목한다.
그렇게 불리는 것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다.
「향유고래」 중에서
작가의 푸르름에 대한 사랑은 바다에서 이어진다.
마치 평면으로 보이는 사진이 아닌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체험과 같다.
하늘아래 푸른 이미지가 투명함 속에 반투명한 실타래처럼 엮어지며,
빛 속에 있다 보면 체화되지 못하는 그림자와 같은 사물들의 결핍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젠 중독을 좋아한다.
중독이 아니면 이 무서운 세상을
살 수가 없다
전투에서는 전우가 생사를 좌우한다.
내가 쓴 보고서의 총량은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두껍다
마르크스는 혁명에 중독되고, 나는 워딩에 중독되고
내 개는 관계에 중독되었다
「중독」 중에서
여영현 시인은 특유의 화법과 예민한 시선으로 포착한 찰나의 삶의 여정을 차곡 차곡 내보인다.
시는 삶을담고 있지만 그의 본질은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시 한편, 한편을 곱씹을 대마다 알게 되는 그의 내면의 시간은 공간이 되고 사랑이 담긴다.
우리는 같은 진동을 느낄 때
함께 운다
속이 비어 있는 것은
껴안고 울고
좁은 골목에선 바람도
막막해서 운다
「공명」 중에서
어찌 보면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는 단어들에서 그의 시선을 투영해 보며
아직도 우리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삶의 희망과 사랑을 바라보게 된다.
너무 할 말이 많으면 일렁이게 된다
너무 아프면 반짝이게도 된다
배들이 떠나갈 때
물 자취가 길다
그게 배들의 운명 같기도 하고,
미련 같기도 하다
아주 큰 스크루를 달고도
깊은 바다를 지나가는 배들은
속도가 느리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울 때는,
죽고 싶을 때였다
먼 섬들이 편도처럼 부었다
미련이 많으면
바다가 깊다
허무해서 돌아보면
더 깊다.
「사랑이 그렇게 지나갔다」 중에서
내 그림자는 나의 거짓말이었다
그게 평생 나를 팔아먹고 살았다
이집의 주인도 한때 눈매 사나웠지만
제 그림자 하나 이기지 못했다
먹구름이 지나가며
정원에 비를 뿌렸다
마당의 호두나무는
새순을 내지 않았다
깊은 우물에서 흔들리는
나를 보았다
사람아, 무얼 그리 애쓰며 사는가?
「운형궁의 척화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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